“저 장면 CG 아니야?”
시각효과(VFX) 전문업체인 '디지털 아이디어'의 손승현(48) 본부장에겐, 이 말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이다. 시각효과는 고층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 풍랑 속에 배가 뒤집히는 장면 등을 컴퓨터를 이용해 영상으로 구현하는 작업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는 TVN 드라마 ‘도깨비’의 시각효과는 디지털 아이디어가 만든 결과물이다. 1997년부터 20년간 영화와 드라마 시각효과 작업을 해온 '디지털 아이디어' 손승현 본부장을 11일 일산 사옥에서 팩트올이 만났다.
손승현 본부장이 군함도 모형을 설명하는 모습
‘도깨비’ ‘부산행’ 등 영화와 드라마 시각효과 전담
디지털 아이디어는 2016년 개봉한 영화 ‘밀정’, ‘부산행’ 등 1997년부터 총 350여편의 시각효과 작업에 참여했다. 손 본부장은 1997년 영화 ‘퇴마록’으로 시각효과 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 영화는 당시로선 시각효과를 대거 활용한 획기적인 영화였다.
손승현 본부장은 “대학에서 광고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대학입학 후 처음 만져본 컴퓨터의 매력에 빠졌다”라며 “컴퓨터로 새로운 걸 만들고 영상이나 사진을 합성하고 편집하는 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손 본부장은 홍익대 광고디자인학과 89학번이다. 광고를 전공했지만 제품의 실제 성능보다 과장하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그는 ‘시각효과’ 쪽으로 진로를 틀었다. ‘영상’과 ‘편집’에 흥미를 느낀 그에게 딱 맞는 분야라는 이유였다.
시각효과가 왜 필요한 걸까. 손 본부장은 “시각효과라고 하면 거창한 것 같지만 요즘 영상작품엔 모두 시각효과가 들어간다”면서 “영화든 드라마든 시간과 비용에 제약이 있다 보니 직접 찍을 수 없는 곳이거나 상상 속에만 있는 장면을 저희가 만드는 거죠”라고 말했다.
"모든 장면을 시각효과로 작업하면 비용과 시간을 더 줄일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각효과는 연출자가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는 장면을 실제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에요. 시각효과는 특수효과(SFX)와 구별됩니다. 특수효과는 100년 전 영화 때부터 있었어요. 현장 스탭이 비가 오는 것처럼 조리개로 물을 뿌리거나, 강풍이 부는 것처럼 대형 팬을 돌리는 거죠. 요즘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물을 뿌리지 않고도 비가 오는 것처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연기하는 배우도 감정을 잡기 힘들고 물을 뿌리는 것보다 작업 시간도 오래 걸리죠. 그래서 모두 시각효과로 만들어야 하는 장면이 있고, 실제 찍는 것과 시각효과로 대체할 부분을 나눠야 하는 장면도 있어요.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실제 상황에서 찍는 것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디지털 아이디어는 드라마보단 영화에서 시각효과를 담당했다. 시각효과 완성도를 높이려면 절대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 드라마는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그는 도깨비가 ‘대박’이 날 거란 걸 알고 참여한 걸까?
손 본부장은 “오히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우리나라에서 판타지 드라마가 흥행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다”며 말을 이었다.
“김은숙 작가와는 태양의 후예 때 같이 작업 하려다가 못했어요. 드라마가 잘 되길래 ‘같이 했으면 좋았을 것을’하는 아쉬움은 있었죠. 그런데 도깨비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동안 드라마 작업을 기피했던 게 기술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하루도 안되는 시간에 완성할 수가 없어서, 완성도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CJ와 영화작업도 오랫동안 함께 해서 손발도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2회 방영되고 반응이 좋길래 ‘같이 하기를 정말 잘했다’라고 생각 했습니다(웃음). 하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편집본을 저희에게 주는 시간이 촉박해서, 20명의 전담팀이 24시간 내내 작업에 매달리면서 시각효과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중국 시장에 진출했는데 그곳에서 쌓인 노하우가 많이 도움이 돼요.”
도깨비는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큼 인기가 높은데다, 총 16부작 드라마로 영화보다 시각효과가 적용되는 분량이 길다. 도깨비로 벌어들인 수익을 묻자 그는 “영화 1편 작업할 때 받는 금액과 비슷하다”라고만 답했다. 구체적인 금액은 얘기하지 않았다.
디지털 아이디어가 시각효과 작업한 드라마 '도깨비'.photo=tvn 캡쳐
‘물’을 표현하는 게 가장 시간 많이 들어
디지털 아이디어는 2010년부터 중국 영화와 드라마 작업에도 참여했다. 제작에 참여한 작품은 ‘드래곤 블레이드’ ‘몽키킹 1,2’ 등이다.
손 본부장은 “도깨비 1화에 보면 김신(공유)이 항해하던 배를 침몰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을 표현하는 게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인데, 중국에서 판타지 영화 작업을 많이 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활용했죠. 기존에 쌓아놓은 기술과 데이터가 있다 보니 작업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었습니다.”
디지털 아이디어는 2016년 기준으로 연 매출 120억원에, 2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현재 중국과 한국에서 50%씩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
중국과 우리나라 영화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손 본부장은 “중국은 영화나 드라마 모두 반지의 제왕처럼 세계관을 만드는데, 우리나라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제로 삼는 게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어서 영화를 찍습니다. 그러다보니 저희가 처음 중국에 진출했을 때 어려운 점이 많았어요. ‘크리처(Creature)’라고 하는데 상상 속에만 있던 ‘드래곤(용)’을 만들거나 호랑이를 창조해야하는 거죠. 기존에 한국에선 보조역할을 주로 도맡았는데 중국에선 저희가 영화의 중요 장면을 채우게 된 겁니다. 중국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을 우리나라 영화에서 다시 활용하는 거죠. 저희 회사도 크는 기회지만 한국 영화가 다룰 수 있는 주제의 폭도 넓어지고 작품 완성도도 함께 향상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겁니다. 봉준호 감독이나 김지운 감독처럼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케이스가 많아질수록 저희가 할리우드에 진출할 확률도 높아질 거라고 봐요. 시각효과에서 가장 중요한건 감독과의 ‘소통’이기 때문이죠.”
디지털 아이디어 직원들이 작업하는 모습
시각효과의 완성은 결국 ‘현장 경험’
시각효과는 컴퓨터를 통해서 완성한다. ‘시각효과 기술=컴퓨터 성능’은 아닐까. 손 본부장은 "시각효과 기술의 발전은 컴퓨터의 성능향상이 아니라, 많은 촬영 현장경험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흔히 시각효과에 대해서 컴퓨터의 성능이 발전하면 더 잘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죠. 예를 들면 작년에 개봉한 영화 부산행의 경우 ‘엽기적인 그녀’와 ‘튜브’에서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얻은 노하우가 집결된 결과물입니다. KTX가 달리다가 터널에 들어갔을 때 내부 조명이 반사되는 것 같은 건 컴퓨터 작업으로만 완벽히 구현할 순 없는 장면이에요. 예전엔 ‘그럴 듯하게 잘 만들었네’라는 반응이었는데, 요즘엔 ‘진짜로 찍은 거야?’라고 묻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그럴 때 저희는 뿌듯하죠.”
디지털 아이디어의 2017년 새해계획에 대해 그는 “올해 준비중인 영화 ‘군함도’와 ‘몽키킹3’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작품외적으로는 자체 기술개발에도 집중할 생각입니다.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요. ‘환경(Environmet)', '크리처(Creature)', '특수효과(FX)', '디지털 휴먼(Digital Human)'입니다. 환경은 쉽게 말하면 영화 배트맨에서 나오는 ‘고담시티’ 같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크리처와 디지털 휴먼은 실재하는 것과 같은 생명체와 인간을 만드는 거지요. 이젠 배경이 아니라 직접 연기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특수효과는 ‘바다 위’, ‘우주’ 같은 배경 효과를 더 세밀하게 작업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판타지 장르 영상제작이 활발해지기 때문에, 앞으로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